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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9, 2012

countdown

battle-2.jpg
Battle Royale, 2000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정말 아무생각도 안난다.
생각하면 계속 생각이 난다.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이 안난다.
답답하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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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edience

남의 떡은 다 커보이는 셈이지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날은 영원히 올거 같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가장 현명한 일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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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adyism, flunkyism

문화 사대주의
cultural toadyism[flunkyism]

사대주의적 태도
toadying attitude

사대주의에 빠지다
be obsequious

그것은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I see[take] that as an obsequious idea.

Posted by administrator at 02:40 AM | Comments (0)

January 28, 2012

a medical experiment on a living body

모든것은 정반대.
극과 극은 안통한다.

Posted by administrator at 02:40 AM | Comments (0)

January 21, 2012

Kid


미래소년 코난


세일러문


알프스소녀 하이디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도전자 허리케인


은하철도999


천년여왕


하록선장

Posted by administrator at 09:36 PM | Comments (0)

January 17, 2012

cats and dogs

IN THEATERS JULY 29th! In her follow-up to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 internationally-acclaimed artist, author and filmmaker Miranda July returns with this story of a thirty-something couple whose decision to adopt a cat changes their perspective on life, literally altering the course of time and testing their faith in themselves and each other.

http://thefuturethefuture.com/

Director: Miranda July
Writer: Miranda July
Stars: Miranda July, Hamish Linklater and David Warshofsky

Posted by administrator at 03:21 AM | Comments (0)

battle royale

겉멋만 들은 애들은 절대 몰라
조용히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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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ity of Sadness (Chinese: 悲情城市; pinyin: bēiqing chengshi) is a 1989 Taiwanese historical drama film directed by Hou Hsiao-hsien. It tells the story of a family embroiled in the tragic "White Terror" that was wrought on the Taiwanese people by the Kuomintang government (KMT) after their arrival from mainland China in the late 1940s, during which thousands of Taiwanese were rounded up, shot, and/or sent to prison.
The film was the first to deal openly with the KMT's authoritarian misdeeds after its 1945 turnover of Taiwan from Japan, and the first to depict the 228 Incident of 1947, in which thousands of people were massacred.
A City of Sadness was the first Chinese-language film to win the Golden Lion award at the Venice Film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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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6, 2012

underestimated

VS

=

Posted by administrator at 11:43 PM | Comments (0)

big deal

1. 1/2로 줄여보자는 일이 4:1이 되었다.
2. 정보는 돌고 도는 것이다. 나만 아는게 아니지.
3.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아는게 아니라 권리가 된다. 주는 놈만 병신.
4. 더이상 부탁하는 일도 없고 시키는 일도 없다.

Posted by administrator at 08:16 PM | Comments (0)

January 11, 2012

mosaic

#39 Kelley Katzenmeyer from mosaicist.net on Vimeo.

http://www.mosaicist.net/
http://koreanhighschool.com/

어느 한 나라에
이력서가 자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한 나라에
상사 말을 충견같이 따라야 하는 한 나라에
그건 그렇고 거기선 개를 먹기도 한다는군

아무튼 꽤 젊은 가수가 하나 있었다.
TV나 라디오에 나와 노래하길 싫어하지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길 좋아하더라
지금 우리들처럼 말야, 안녕?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가서
그 남자는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를
천번째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왜냐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든

1996년에 그 남자는 커트 코베인이 되었다

유튜브에 그 남자의 이름을 쳐봐! 함께 흐느끼자
그놈의 이름의 철자를 알려주마

K-I-M K-W-A-N-G S-E-O
K-I-M K-W-A-N-G S-E-O
K-I-M K-W-A-N-G S-E-O-K

KIM KWANG SEOK
(킴 크방 제옥)

너는 한국의 밥 딜런
한국의 커트 코베인
너의 목소리는 울려퍼진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같이

K-I-M K-W-A-N-G S-E-O-K

천번째 공연 후에
Kim는 방문을 걸어 잠궜다
Kim는 32살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의 행복과 슬픔, 신성한 것들에 대해 노래했지만
우리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사가)한국말이였으니까
96년도엔 유튜브도 없었으니까

Kim는 지금의 우리처럼 목소리 작은 사람들을 위해 노래했어

우린 지금 일어나 이제서야 외친다
이름 쓰는 법이 뭐라고?

K-I-M K-W-A-N-G S-E-O
K-I-M K-W-A-N-G S-E-O
K-I-M K-W-A-N-G S-E-O-K

KIM KWANG SEOK

Posted by administrator at 12:44 AM | Comments (0)

January 10, 2012

polygon

The Nature of Art

아이에게 주위의 모든 것은 새롭고 신기하다. 앉는 용도의 의자도 어깨에 메면 책가방이 될 수 있고, 십자가도 비행기가 될 수 있다. 아이에게 모든 사물은 그것만의 목적, 용도가 없는 열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자는 의자가 아닌 가방이 될 수 있고 아이들은 그것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니체가 말한 데로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기에 이런 순수한 창조의 즐거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류호열의 작업엔 이런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일련의 작업들은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롭게 만든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보통의 혁명처럼 무겁거나 어둡지 않다. 또한 우리에게 새롭게 만들어진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그는 우리에게 그의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 작가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세계에 가두는 것이 아닌 그 속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내기 바라는 것이다. 그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와 함께 끊임없는 창조를 유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빛갤러리 큐레이터 추선정

Posted by administrator at 11:44 PM | Comments (0)

booklet

‎1. 잘하면 우주구경을 할 수도 있겠다.
2. 다들 G케이스보다는 고프로에 더 관심을. 나도...
3. 아직도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
.
기술과 인문학, 교양의 교차로에 애플이 있다는 말은 스티브와 팀 모두가 올바르게 말했다. 잡스의 미학적인 감각이 어째서 중요한지에 대한 헌사를 바친다. 헤르만 헤세(Herman Hesse)의 소설, 황야의 이리(Steppenwolf)에서 따왔다.

'이 작은 장난감들과 유행품, 사치품들은 단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제조업자나 장사꾼이 만들어낸 가치 없고 진부한 발명품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그들은 사랑에 봉사하고 감각을 다듬어주며 권태로운 우리의 주변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마술처럼 새로운 사랑의 매체가 되려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다양한 형태로 갖고 있다. 사랑만을 목적으로 가진 그들은 작은, 아니 오히려 더 큰 아름답고 권위로운 세계를 이룬다. 이 가방은 가방이 아니며, 이 지갑은 지갑이 아니고, 이 꽃은 꽃이 아니며, 이 부채는 부채가 아니다. 이 모두는 사랑과 마력, 그리고 매혹의 구체적인 플라스틱 재료이고, 하나 하나가 심부름꾼이자 밀수꾼이며, 무기인 동시에 돌격의 함성이다.'

Steve: Who’s Going to Protect Us from Cheap and Mediocre Now?
August 28, 2011 - 10:15 pm | Edited by Jean-Louis Gasse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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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04, 2012

tama tama

TamaTama-image-2.jpg

즉, 우리에 존재는 우연의 산물이며 인생은 우연의 만남의 연속이다.
그래서 모든 만남은 <목숨을 건 도약>(가라타니 고진)이다.
출처: 아래
http://blog.naver.com/jongsoo1023?Redirect=Log&logNo=70121963212

출처: 아래
http://www.hicnunc.net/down/entry/%B0%A1%B6%F3%C5%B8%B4%CF-%B0%ED%C1%F8-%C5%BD%B1%B81

탐구

누구나 아이로 태어나서 부모에게 언어를 습득한다. 이것은 전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며 극히 일반적인 조건이다. 또한 우리가 타자와 대화할 때 항상 어딘가 서로 통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 또한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경우 서로를 더 잘 이해하려고 한다면 상대방에게 묻거나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타자와 대화하는 것은 '가르치고-배우는' 관계에 선다는 뜻이다. 공통규칙은 오직 '가르치고-배우는' 관계 후에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가르치고-배우는' 비대칭적 관계가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적인 상태이다. 이러한 관계는 결코 비규범적인(abnormal) 것이 아니다. 규범적인(normal) 경우, 즉 동일한 규칙을 갖는 대화 쪽이 오히려 예외적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러한 대화가 자신과 동일한 타자와의 대화, 다시 말해 자기대화(모놀로그)를 규범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자기대화 또는 자신과 동일한 규칙을 공유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대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화는 언어 게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한다. (13-14)

'가르치다'라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태도를 변경한다는 말은 간단히 말해 공통의 언어 게임(공동체) 안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을 전제할 수 없는 장소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타자를 만난다. 타자는 나와 동질적이지 않다. 또한 나와 적대하는 또 하나의 자기의식도 아니다. 물론 그러한 장소는 우리의 방법적 회의를 통해서만 발견된다. (18)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상품 교환이란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레비-스트로스가 분명히 지적한 대로 공동체 내부에도 교환은 있으며 교환 체계도 존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교환이다. 그 '사이'는 어디 어디라는 공간적인 문제가 아니며 언제라고 하는 것도 역사적인 문제도 아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그것은 '추상력'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공동체(언어 게임)와 공동체 '사이'에서 어떻게 교환(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인 것이다.
그것은 약분가능한(commensurable) 것을 조금도 지니지 않은 두 개의 다른 물건이 어떻게 등치되는가 하는 질문과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교환은 예컨대 가족 내부에서 일어나는 교환처럼 그렇게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앞의 질문은 동일한 물건이 다른 공동체에서 왜 다른 가치를 갖는가 하는 것으로 변형되어야 한다. 오직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만 교환 문제(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어려운 것이 된다.
마르크스는 이 교환 관계를 가치 형태로서 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상대적 가치 형태와 등가 형태라는 관계의 비대칭성으로 논하고 있는 것이다. 속된 말로 하자면 그것은 바로 파는 입장과 사는 입장의 비대칭성이다. 이 비대칭성은 결코 지양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화폐(소유자)와 상품(소유자)이라는 관계의 비대칭성 또는 자본과 임노동이라는 관계의 비대칭성으로 변형될 뿐이다.
마르크스의 업적은 본인의 말대로 교환의 기저에서 그러한 비대칭성을 발견한 데 있다. 그것이 바로 가치 형태이다. (19)

요컨대 공동체란 공동성이며 바로 하나의 언어 게임으로 닫혀 있는 '영역'인 것이다 .(21)

다시 한번 말하자면 마르크스가 지적한 것은 경제학에서 가치 형태와 교환 관계의 비대칭성이 은폐되어 있다는 점이다. 언어학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언어학은 이른바 가르치고-배우는 관계의 비대칭성을 은폐한다. 비대칭적인 관계를 은폐한다는 것은 관계 또는 타자를 배제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야콥슨의 경우처럼 언어학은 고전(신고전) 경제학과 같은 교환 모델, 예컨대 메시지(상품)-코드(화폐)-메시지(상품)라는 모델에서 출발한다. 이는 공동체 내부의 교환만을 보는 것이다. (21)

예컨대 음운은 음성과 달리 외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음운은 의식 속에 어떤 의미가 이미 존재하는 경우, 그러한 경우에만 의미를 변별하는 형식으로서 나타난다. (22)

<우리가 말하는 가치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원리를 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 즉 언어 안에는(다시 말해 하나의 언어상태 안에는) 오직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차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 사이에 수립되는 적극적인 말의 항목을 상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언어 안에는 적극적인 말의 항목을 갖지 않는 차이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바로 거기에 역설적 진리가 존재한다. (『일반언어학 강의』)>
하지만 자국어 안에서 생각하는 한 누구도 의미가 적극적으로 존재한다는 실감을 없앨 수 없다. (23)

바꿔 말하자면 사람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하는 것이다. 롤랑 바르뜨도 '쓰다'라는 동사는 타동사가 아니라 자동사라고 했는데 '말하다'라는 동사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무언가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말하는 것이다(예컨대 유아는 '의미도 없이' 그냥 재잘거린다). 하지만 우리 자신은 그것을 들을 때 그 말이 무언가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마치 사전에 그러한 '의미'가 내적으로 존재했던 것처럼 생각해버린다.(32)

한 단어 또는 한 행을 쓸 때 우리는 글이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따라가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을 우리 자신의 '의도'로서 회수한다. 다 쓴 다음에는 스스로도 바로 이런 것을 쓰고 싶었다고 생각해버린다. (33)

타자가 당신은 말하고 쓰기 전에 또는 그 과정에서 내심으로는 다른 것을 의미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그렇지 않다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 (33)

체계의 변형을 개개인의 실천에 돌릴 수 없는 이상 우리는 차이 체계가 스스로 변한다고(자기차이화) 할 수밖에 없다. 즉 인간의 실천과는 무관하게 언어 자체가 스스로 활동한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도로에서 빨간 불에 멈추어 설 때 마치 빨간 불 자체가 우리를 멈추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유사하다. (43)

예컨대 언어가 표준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의미하는' 일이 성립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위태롭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구별을 허용하지 않은 곳에 비트겐슈타인적 회의의 철저함이 존재한다. 언어가 원래 대화적이고 타자를 향하고 있다는 바흐찐의 주장조차도 이제는 불충분하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타자를 '우리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예컨대 외국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물론 이 타자가 아이든 동물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말하고=듣는 주체'에게 '의미하는' 일의 내적인 확실성을 잃게 하는 것이고 그것을 근거없는 위태로움 속으로 몰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44-45)

거듭 말하지만 '의미하는' 일이 그러한 타자에게 성립할 때 바로 그런 한에서만 '맥락'이 있고 '언어 게임'이 성립한다. 왜 그리고 어떻게 '의미하는' 일이 성립하는지는 끝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성립한 뒤에는 왜 그리고 어떻게 성립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즉 규칙, 코드, 차이 체계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해 철학이든 언어학이든 경제학이든 이 '어둠 속의 도약'(크립키) 또는 '목숨을 건 도약'(마르크스)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규칙은 사후에 발견되기 때문이다. (45)

사르트르는 타자의 시선이 우리(대자 존재)를 응고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컨대 고양이의 시선에 대해서는 왜 그렇지 않을까. 그때에는 '언어 게임'이 거의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타자는 우리에게 이따금씩 관심을 두는가 싶다가도 전혀 무관심한 고양이와 닮았을지도 모른다. (46)

'짐작한' 바와는 '다른' 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 그에게는 철학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리고 '철학의 임무'는 '전후(前後)'에 관한 '조망'을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으로 '난점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조망(perspective)'은 니체의 '계보학'과 유사하다. 이 조망은 니체의 '원근법적 도착', 즉 '규칙에 얽매인' 상태에 '한 줄기 빛을 던져주는' 것이다. 니체의 계보학은 동일 의미(규칙)를 불확정성. 무근거성 또는 다양성. 다방향성 안으로 되돌려주는 것, 다시 말해 '다양한 힘이 발현되는 장(場)'으로 되돌려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57)

애당초 '아픔'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게임' 속에서 습득된 언어의 용법에 지나지 않는다. (63)

<매일매일 진행되는 언어 게임 각각의 형용하기 어려운 다양성은 우리의 언어 치장이 모든 것을 균일화하기 때문에 의식에 떠오르지 않는다>(『철학적 고찰』)(74)

'언어 게임'이라는 개념은 규범적(normal) 커뮤니케이션을 전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의심하는 곳에 존재한다. 즉 규범(norm) 혹은 동일하고 표준적인 '의미'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것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조명하려는 것이다. (82)

'신용'이란 결국 '판매'를 관념적으로 선취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신용'이 유발하는 시간적 지연은 어떤 의미에서 자본의 운동을 역전시킨다.(122)

신용제도는 자본 운동의 회전을 가속화한다. (...) 신용 제도 하에서 자본의 자기운동은 축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결제'를 한없이 지연하기 위해 강요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123)

예를 들어 "말해진 것은 단지 언어를 통해서만 설명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언어 자체는 설명될 수 없다"(『철학적 문법』)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서 말을 가르치고 또 배우는 것일까. 신비적인 것, 즉 말로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상투적인 표현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말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 대한 언어(메타 언어)라는 생각을 부정한다. 물론 그것은 그가 '가르치다-배우다'라는 관점에서 언어를 고찰하게 된 다음의 일이다. (131)

모든 설명은 사후적인 설명이며 합리화이다. (159)

Posted by administrator at 04:42 AM | Comments (0)

January 01, 2012

tidy up

1월 1일에는 이곳저곳 청소를 아주 열심히 했다.
보람찬 하루가 될뻔했다.

Posted by administrator at 11:02 PM | Comments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