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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31, 2006

Sound of Light

Sound of Light
Takagi Masakatsu is a visual artist and musician whose work knows no aesthetic borders. He has presented video installations and performed live at art spaces around the world. He also produces music videos, as well as music for commercials and film. He has toured with musician and remix artist David Sylvian. In 2006, “Bloomy Girls,” a visual book with his video arts collection, was released. Res magazine named him one of the 2006 RES 10, an annual selection of emerging artists who will influence the worlds of film, video, design, advertising, music, and media art in the upcoming year and bey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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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agi's Website Takagi Masakatsu, Kyoto, Japan
Original Movie -> Let's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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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7, 2006

ROJO@edic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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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JO®edicions in Madrid Tonight!!!
Presentación de los cuatro nuevos títulos de la nueva serie de libros de artista HOY miércoles 26 a las 20.00h en Subaquatica. c/ Caballero de Gracia 9. 28013 Madrid. Raquel Sakristan comparte con nosotros sus últimas horas en España y firmará su libro antes de partir de nuevo hacia su agujero en NYC. Eltono & Nuria también se pasarán un rato a firmar ejemplares. Cervecita fresca, aperitivos y regalos sorpresa a todos los asistentes. Descuento especial en los nuevos libros solo durante esta presentación. Presenting the new four titles of the monographic artist book series, TONIGHT wednesday 26th, starting at 20.00h in Subaquatica. c/ Caballero de Gracia 9. 28013 Madrid. Raquel Sakristan shares with us her latests hours in spanish ground to sign copies of her book before she goes back to her NYC hole. Eltono & Nuria will also come by to sign some copies to all assistants. Fresh beer, snacks and surprise presents for all people attenting. Special discounts on the new books only during the ev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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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JO@s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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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JO®smart open your mind
Proyecto especial realizado en colaboración con smart en el que artistas seleccionados crean obra original especifica para la marca de automóviles más "cool" del momento . Special art project made in cooperation with smart where selected artists create specific works for the coolest car brand around.

04.07.2006
Edición especial impresa de serie limitada.
Special limited printed edition.

04.07.2006 - 07.07.2006
Exposición colectiva en la galería KBB de Barcelona.
Group art exhibition at KBB Gallery in Barcelona, Spain.


14.07.2006 - 16.07.2006
Exposición colectiva en la galería Invaliden1 de Berlin, Alemania.
Group art exhibition at Invaliden1 Gallery in Berlin, Germany.


Artwork by: Neasden Control Centre, Nuno Valerio, Juju's Delivery, Albert Bertolin, TvBoy, Sosaku Miyazaki, Patrick Farzar, Fupete, Boris Hoppek, Yummy Industries, Laurent Cairoli, Eduardo Bertone, Lolo, Carolina Melis, Eltono+Nuria, Fabrizio Contarino, Sixeart, Les Mentary Brothers, Mimmo Manes, Diva & Jessica Palazzo, Javier 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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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나 병재입니다. 전 우진입니다.
무슨일을 하든지 항상 자신있던 녀석이다. 자신감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그녀석의 이름 첫번째 글자처럼, 아는것도 많고, 그림도 잘 그리고,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고, 항상 인기도 많은 그런 녀석이다. 거기에다가 결정적으로 참으로 인간적이다.
그래서 만날 수가 없다. 너무 힘들다.
그래도 먼발치에서 그녀석의 만화는 항상 열심히 본다. 왜냐면 난 만화를 좋아하니까.
난 역시 바라만 보는게 딱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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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야간다. 나병재. 스포츠칸연재만화 나두야간다를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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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07, 2006

Charity

점심 먹다가 본 중앙일보의 [week&CoverStory]를 들고 나올뻔 했다.ㅡ,.ㅡ;;
살아서 업보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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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바람' 필리핀의 코리안 농사꾼 [중앙일보 이나리]

차관까지 해 봤지, CEO도 해 보고, 은퇴할 때 와달라는 곳 많았어 지금은 필리핀 촌구석의 농사꾼 … 그 놈의 정 때문에 여기까지 왔네

박운서(67)를 아십니까. 일명 '타이거 박'. 호랑이 같은 근성과 추진력으로 유명한 전직 관료이자 거물 기업인입니다. 1994년, 행정고시 합격 28년 만에 통상산업부 차관이 됐습니다. 공직 퇴임 뒤에는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사장으로 가 부실투성이 공기업을 여봐란 듯 살려냈습니다. 데이콤 회장 시절엔 또 어땠나요. 만성 적자이던 회사를 흑자로 돌려놨습니다. 2004년 은퇴했지만 와주십사 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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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거절했습니다. 쉬고 싶었습니다. 그만하면 열심히 산 인생이라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런 그가 사라졌습니다. 새 집 지으려 산 양평의 500평 대지, 노후 대비용이라던 골프장 회원권 3개, 찰떡 금실을 자랑하던 아내마저 남겨두고. 그?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11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참으로 엉뚱한 곳에서 그를 찾았습니다. 농부가 됐다 합니다. 바다 건너 필리핀, 전기 뚝뚝 끊기고 제대로 된 농기계 하나 없는 오지에서 논농사를 짓는답니다. 돈 더 벌려, 음풍농월 하려 그 먼 땅까지 갔을까요? 그럴 리가요. 그는 새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마음 가득 그들 생각뿐이라 떨어져 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적어도 팔십까지는 건강히 살아야 할 이유를 비로소 찾았다고 합니다.

궁금증에 못 이겨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배 타고, 지프 타고, 오래 걸어서.

민도로 필리핀 글.사진=이나리 기자 windy@joongang.co.kr

필리핀 민도로섬 칼라판 부두. 시계를 본다. 오후 1시13분. 약속한 시각보다 47분이나 먼저 도착했다. 박 전 차관은 "시간 지키려 애쓸 필요 없다"고 했다. "2시부터 나와 기다리겠지만 5시쯤에나 만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고속버스건 페리건 딱딱 맞춰 바꿔 타기 쉽지 않은 곳이 여기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고속버스도 페리도, 딱딱 맞춰 와 주었다.

민도로는 수도 마닐라가 있는 루손섬 서남쪽에 있다. 필리핀에서 7번째로 큰 섬이다. 섬 중앙을 가로지르는 할 고트 산맥을 기점으로 오른쪽이 오리엔탈 민도로, 왼쪽이 옥시덴탈 민도로다. 박 전 차관은 제주도 2배 크기의 오리엔탈 민도로 남부, 로하스 부근에 산다고 했다. 정부군과 지주들이 고용한 무장 경호원, 그에 맞서는 사회주의 무장세력 신인민군(NPA.New People's Army)며 원주민인 망얀(Mangyan)족 사이 무력 다툼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부두 밖으로 나섰다. 뜨겁다. 태양도 호흡곤란을 일으킬 법한 날씨다. 우기 직전인 6월 초.중순께가 가장 덥다 했던가. 우리나라로 치면 도청 소재지 급이건만 햇볕 피할 곳 하나 마땅치 않다.

급한 대로 부두 앞 간이식당에 들어갔다. 필리핀인 대여섯 명이 점심을 먹고 있다. 좀체 보기 힘든 이방인의 출현에 눈길이 확 쏠린다. 콜라 한 병을 시켜 놓고 엉거주춤 앉았다. 열댓 살이나 먹었을까, 주인집 딸이 입은 7부 바지가 눈에 띈다. 한글이 프린트돼 있다. '정지' '보행자 출입 금지'. 요즘 또래 사이에 유행하는 스타일이란다.

박 전 차관과 어렵게 통화가 됐다. 그의 휴대전화는 하루 중 3분의 2 이상이 불통이다. 그만 해도 유선전화가 거의 없는 이곳에선 감사할 일이란다. 오후 2시, 그가 나타났다. 새까맣다. 그리고, 너무 말랐다.

"키 174㎝에 65㎏이었는데 55㎏이 됐어요. 더워 그런가 봐, 허허."

그가 몰고 온 승합차에 올랐다. 2시간30분은 더 달려야 한단다. 그런데 뜻밖에 일행이 있었다. 그의 큰 아들 찬준(37)씨와 며느리 정효경(33)씨였다.

"베트남에서 직장생활 하고 있는 걸 제가 지난해 말에 불러들였어요. 당최 혼자 감당할 수가 있어야죠."

아버지가 부르자 찬준씨는 두말 없이 휴직계를 내고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신혼의 며느리도 조용히 짐을 쌌다. 효경씨는 지금 임신 12주째라 했다. 내심 혀를 찼다. 식구들까지 이게 웬 고생이란 말인가.

"글쎄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 처음엔 이럴 생각이 아니었거든요."

어쨌거나 시작은 2005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들하고 부부동반 필리핀 골프 여행을 갔어요. 제 아내가 목사거든요. 2년 동안 지원해 온 선교지가 있다기에 한번 방문해 봤죠."

로하스 개척 교회를 둘러본 다음 산 속 망얀족 마을까지 가 보기로 했다. "솔직히 짜증나데요. 덥지, 교통 불편하지, 벌레들은 마구 덤벼들지…. 이런 데까지 끌고와 고생시킨다고 아내한테 신경질도 많이 냈죠."

하지만 로하스에서 다시 비포장 도로로 2시간, 차에서 내려 3시간을 걸어 들어간 산 속에서 그는 딴 세상을 봤다.

"다 같은 사람인데 왜 저렇게들 살아야 하나 …"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어요. 개처럼 돼지처럼."

망얀족은 15세기 스페인 정복 이전부터 필리핀에 뿌리박고 살던 원주민이다. 스페인 지배 300년, 미국 지배 100년 동안 극심한 박해에 시달렸다. 시련은 지금도 끝나지 않아, 필리핀인들도 망얀족이라면 같은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먹는 건 바나나, 고구마, 소금 약간이 전부예요. 댓잎이랑 야자나무 잎으로 얼기설기 엮은 움집에 사는데, 아이들은 왜 또 그렇게나 많이 낳는지. 열 낳으면 그중 살아남는 건 한 둘. 때론 살기 막막해 태어나자마자 산에 버리거나 아예 숨 끊어 땅에 묻어버리는 일도 있어요."

평균 수명 40세. 학교도, 경작할 땅도, 미래의 희망도 없다 보니 사람들은 게으르고 의욕이 없었다. '문명세계'와의 접촉이란 간혹 읍내 시장에 가 싸리 빗자루나 바나나를 파는 것이 전부. 생명줄인 소금과 등유를 사기 위해서였다. "아이들 맑은 눈망울을 보니 별 생각이 다 나데요. 다 같은 사람인데 너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니…."

먹먹해진 가슴은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대로였다. 그는 깊은 묵상에 잠겼다. "40년을 나와 가족을 위해 일했으니 남은 생은 이웃을 위해 살아도 좋다 싶었어요."

2004년 5월 다시 필리핀에 가 '모리아자립선교재단'을 설립했다. 7월에는 아주 짐을 쌌다. 아내도 따라 나섰다. 로하스 읍내에 방 한 칸짜리 아파트를 빌렸다. 열흘 뒤 아내가 쓰러졌다. 더위와 벌레, 부실한 음식 탓이었다. 그 홀로 남았다. 이를 악물었다.

현장 조사 끝에 쌀농사를 짓기로 했다. 젊은 망얀족 부부들을 데려다 일꾼으로 키우고, 학교.고아원.병원 등을 설립하는 베이스 캠프로 삼기 위해서였다. 재단 이름으로 논 16㏊(5만 평), 그에 딸린 망고나무 밭 1㏊(3100평)를 샀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먼저 물소 500마리를 끌어다 경지 정리에 나섰다. 폭풍에 쓰러진 망고나무로 그득했던 땅도 깨끗이 손을 보았다. 농장 안에 300m 길이의 도로를 만들고 다리도 두 개 놓았다. 전문가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뛰었다.

9월 말 게스트 하우스 건축을 시작했다. 양평에 지으려던 집 설계도를 가져와 썼다. 자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제발 단단하게 구워 달라고 부탁한 블록도 슬쩍만 힘을 주면 부스스 부서졌다. 업자 보는 앞에서 두 트럭 분량을 깨버렸다. 비로소 제대로 된 물건이 도착했다. 전주 9개를 세워 전기를 끌어오고 지하수도 개발했다. 위성인터넷 안테나도 세웠다. 통신.도로.수도.전기. 사람 모여 사는 곳이라면 꼭 있어야 할 인프라를 모두 제 손으로 만들었다. 그 모든 일을 불과 6개월 만에 해냈다.

"와서 보니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직파법(씨를 논에 직접 뿌리는 것)을 쓰고 있더군요. 아무래도 이앙법(모판에서 싹을 틔워 논에 옮겨 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어요. 모내기는 인건비가 문제인데, 저야 일자리 만들러 온 사람 아닙니까."

이앙법을 주로 쓴 결과 두 번 추수로 45㎏들이 쌀 3400가마를 생산할 수 있었다(여기는 이모작 지대다). 이웃 농부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앙법 외에 생산량을 늘린 또 하나의 '비법'은 성과급제였다. "붙박이 일꾼 세 명에게 '㏊당 100가마 이상 생산하면 임금을 80% 더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새벽 4시만 되면 삽 들고 나섭디다, 허허."

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돼 간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망얀족들을 데려다 일꾼으로, 재단의 리더로 키우려던 꿈은 몇 년 뒤로 미뤄지게 됐다. 농사짓는 법은커녕 기본 교육조차 받지 못해 도무지 농장 일에 적응하지 못했다. 대신 어렵게 살던 필리핀인 농부 셋을 불러들였다. 농장 안에 집부터 지어 주었다. 아이들을 포함해 17명이 그의 새 가족이 됐다.

하지만 그가 한 '진짜 큰일'은 할고트산 중턱 티나와간 평야에서 피비린내를 지운 것이다. "720㏊나 되는 땅이에요. 정부가 한 지주에게 50년 임대를 해줬죠. 근데 망얀족은 그 땅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자기들 터전이라 생각해요. 자연히 지주의 사설경비대와 정부군, 망얀족과 그들 편인 NPA 사이에 소규모 전투가 끊이질 않았죠."

중재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지주와 정부, 망얀족과 NPA 측을 두루 만나 협상을 이끌어 냈다. 지주에게 6000달러를 줘 임대권을 포기하게 하고, 지방정부와 협상을 통해 장기적으로 그 땅이 망얀족의 자립 터전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고 산 깊숙이 숨어 살던 망얀족들도 티나와간 쪽으로 서서히 근거지를 옮기고 있다.

호랑이에 비견될 만큼 강골이라 하나, 왜 그라고 힘든 순간이 없었겠는가. "세 번 보따리를 쌌습니다. 때론 모든 일이 불가능하게 느껴져 견디기 참 힘들더군요. 그때마다 가족의 격려와 기도가 큰 힘이 됐어요."

이제 민도로에서 그는 유명인사다. 도와달라고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금도 몇몇 교회며 학교, 망얀족 마을에 적지 않은 기부를 하고 있지만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노 워크, 노 페이(No Work, No Pay). 일하지 않는 자를 거저 도울 수는 없습니다. 전 농장 도로를 이용하려는 이들에게도 '공짜는 없다, 돌 하나라도 날라 오라'고 주문해요. 진정한 자립이란 당장의 호구를 넘어 정신을 바로 세우는 데 있으니까요."

간혹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e-메일을 보내온다. "어떤 놈은 미쳤다 하고, 또 어떤 녀석은 신선놀음 한다 그래요. 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린 말일 수도 있죠. 노년의 안온한 삶을 버린 게 아쉽기도 하지만 사실 흡족함이 더 큽니다. 제가 지금 한국 있으면 뭐 하겠어요. 골프 치고 술 마시고 여름이니 개고기나 먹으러 다니고, 정부 욕하다 정치인들 욕하다 날 다 새지 않겠어요. 입으로 짓는 죄를 피한 것만도 큰 복이지요."

한시름 놓은 그는 요즘 또 새 사업을 구상 중이다. 중국 진항도에 하층민을 위한 자립 재단을 만들려는 것. 오래 전부터 연을 맺어온 조선족 선교사 부부가 이미 기반을 닦고 있다.

"10월이 돼 아들 부부가 돌아가고 대신 아내가 합류하면 이곳 생활도 더욱 안정될 겁니다. 그럼 중국 쪽 일에 매진해야죠. 뭐 팔십 살까지야 안 살겠습니까. 죽는 날까지 두 팔 두 다리, 놀리지 않으렵니다. "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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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lesse Oblige

우리나라엔 '할머니 기부'만 있나.
[기고] 예종석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장(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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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미국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워렌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겸 최고경영자(CEO)가 370억 달러(약37조원)의 자산을 게이츠가 운영하는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키로 했다고 밝힌 가운데, 빌 게이츠 부부가워렌 버핏(오른쪽)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36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기부했다. 그것도 그 많은 돈의 대부분을 자식뻘 되는 친구인 빌 게이츠 재단에 쾌척했다. 이유는 "빌 게이츠가 믿음이 가고 그가 잘 할 것 같아서"란다.

이 소식을 접하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그가 참으로 크게 깨우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잘 사는 길이 무엇인지 아는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게 자식이 셋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길을 택하지도 않고 아무 조건 없이 그 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부가 왕조적으로 세습 되어선 안 된다"

그는 "내 자식들이 내가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물려받을 수는 없다"며 "부가 왕조적으로 세습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했다. 현인이 아니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다. 그의 자식들도 이런 아버지의 뜻을 일찍부터 이해했는지 그들도 이미 자신들의자선재단을 각기 운영하고 있다.

흔히들 '이 세상에 쓰고 간 만큼이 자기 돈'이라고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도 워렌 버핏은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고, 돈쓰기의모범을 보인 사람이다. 미국이 밉다가도 진정으로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기부문화의 전통에 있다.

미국 기부문화의 정점에는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있다. 카네기는 65세가 되던 1900년 "부자인 채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던 자신의 철강회사를 5억 달러에 처분한다.

당시의 일본 정부 예산이 1억 3천만 달러였다고 하니 그 돈이 얼마나 큰 돈이었는지는 쉽게 짐작 가는 일이다. 그는 "부자의인생은 두 시기로 나누어야 한다. 전반부는 부를 획득하는 시기이고, 후반부는 부를 분배하는 시기여야 한다"며 그때부터 돈 벌기를중지하고 돈쓰기에 나서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미국 전역에 수많은 도서관을 건립하였으며 선행기금을 창설하고 교육진흥기금과 장학기금등에 기부하였다.

그리고는 84세 되던 해에 "돈은 벌기보다 쓰기가 어렵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빈손으로 고향 스코틀랜드에 돌아가 묻혔다. 카네기의 기부는 어릴 적 입은 작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다.

피츠버그에서의 소년 시절 카네기는 한 사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카네기는 거부가 되고서도 그 도서관의 따뜻한배려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 고마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카네기를 위대한 기부자로 만든 계기가 된 것이다.

악명 높은 기업인 카네기가 세상의 존경을 받는 이유

한때 사회의 지탄을 받는 악명 높은 기업인이었던 카네기가 지금은 세상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인물이 되었다. 미국에는 카네기를시발점으로 해서 록펠러, 포드 같은 기업인들이 기부를 통해 부의 사회 환원을 지속적으로 행해오고 있으며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빌게이츠나 테드 터너 등에 의해 면면히 계승되어오고 있다.

이러한 전통이 부자를 존경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워렌 버핏은 그 명예로운 기부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아름다운 전통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기부 현실은 어떤가. 우리에게도 고액기부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도 1조원을 기부한 재벌이 있었고, 또 다른 재벌은8000억 원을 내놓은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기부 행위가 그 기업들이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직후거나 총수가 불미스러운사건으로 구속되는 마당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그 사건들이라는 것이 다 재산의 불법상속과 관련된 일이라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게 한다. 세금으로납부했어야 될 돈을 면죄부의 대가로 기부했다는 비판도 있다. 반대 급부를 바라는 기부는 기부가 아니다.

반대급부를 바라는 우리나라 부자들

이제 우리의 부자들도 다 같이 잘 사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빌 게이츠는 "부자들은 사회에 특별한 빚을 지고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우리의 재벌들도 세계의 부호 리스트에 심심치 않게 이름을 올리고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부자리스트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부자 이웃들은 아직도 나누기보다는 모으기에 급급하고 있다. 나와 내 가족이 잘 살기 위해 모으고 더 많은 재산을 세습하기 위해 모은다. 부는 축복일 수도 있지만 저주일수도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부의 세습 과정에 가정의 화목이 깨어지는 경우를 흔히 본다. 부모가 남겨놓은 재산 때문에 자식 간에 의가상하거나 심지어는 소송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로 있으며 부모가 남긴 재산으로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적지 않게본다.

남겨놓은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툼의 강도는 더욱 커진다.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세습한 셈이다. 우리의 부자들이 부를 세습하기위해 애쓰는 이 순간에도 월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은 미국 정부의 상속세 폐지 움직임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그들은 "상속세 폐지는 혐오스러운 시도"라며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부유층에 특혜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상속세는 존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부자들과 선진국의 부자들은 왜 이렇게 생각이 다를까. 그 이유는 부를 행복으로 바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부를행복의 원천으로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나눔의 실천이다. 개인의 행복 차원에서도 나눔을 생각할 때이지만 사회 전체의 삶의 질향상을 위해서도 이제 나눔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기부는 분배가 고르지 못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춰 우리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부에는 할머니들만 있다

우리나라 기부에는 할머니들만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김밥할머니, 떡장수할머니, 삯바느질 할머니들만이 기부를, 그것도 평생을 힘들게 모은 재산을 기부해서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것이 연중행사처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런 훌륭한 할머니들께만 기부를 맡겨놓을 것인가. 이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한 나라의 일원인 우리가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을 할머니들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대부분 생애를 조금 더 갖기 위해 노력하는데 소비한다. 조금을 이루면 좀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조금 더 조금 더하다 결국은 다 이루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그것도 기껏해야 내 자신과 가족이 잘 살기 위해 하는 노력이다.

이제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크게 이룬 사람일수록 사회에 대한 채무는 크다. 그런 점에서 워렌 버핏의 기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언제쯤 그런현인을 만날 수 있을까.

오마이 뉴스 : http://www.ohmynews.... 951&ar_seq=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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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06, 2006

Miracle Play

해 본 사람은 안다. 쉬울 것 같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루에도 열두번씩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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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Neighbours's Campaign. Miracle of 100 won.굿네이버스를 만나고 싶으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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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03, 2006

Somewhere Over The Rainbow

콜체스터에서 무지개를 보면서 참 오랫만에 보는 무지개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벌써 2년전이다.
귀국한지 벌써 4개월이나 지났다. 바쁘게 사니까 좋은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는데 그래도 바쁘게 사는게 좋은거라 믿고 있다. 그리고 3년전과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라서 그런지, 사실 별로 바쁜 것 같지도 않다.
같이 공부하고 돌아온 친구들도 같은 마음일까? 영국의 파란 하늘이 다들 그리울 것 같다.
10년쯤, 아니 20년쯤 지난뒤에 다시 함께 가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때까지 모두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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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ustrial Motoway in Iksan. 1 July 2006. by K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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