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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4, 2005

A point of view

아래 두 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Point Of View 는 매우 중요하다고 Martina 선생님은 항상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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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ston Upon Thames. 23rd. June.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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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ysis

코펜하겐 근처 오덴세 출생. 가난한 양화점의 아들로 아버지는 문학을 좋아하여 어린 아들에게 《아라비안 나이트》나 극작가 호르베아의 작품 등을 들려주었으며, 어머니는 루터교의 신앙을 교육하였다. 소년 안데르센은 아버지로부터 시적 재능을, 할머니로부터 공상(空想)을, 어머니로부터 신앙심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15세 때 배우가 되려고 무일푼 단신(單身)으로 코펜하겐으로 갔으나, 피나는 노력의 보람도 없이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몇 번인가 절망의 늪에 빠졌지만, 당시 유망한 정치가이며 안데르센의 평생 은인인 요나스콜린의 도움으로 슬라겔세와 헬싱고르의 라틴어 학교에서 공부하고, 마침내 코펜하겐의 대학을 졸업하였다. 대학시절부터 시작(詩作)에 뜻을 두어 일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었다. 1833년 이탈리아 여행의 인상과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즉흥시인 Improvisatoren》(1835)이 독일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그의 문명이 유럽 전체에 퍼졌다.

같은 해에 내놓은 최초의 《동화집》은 동화작가로서의 생애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그 후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안데르센 동화집》이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각 가정에서 기다리는 선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동화 창작은 1870년경까지 계속하여 모두 130편 이상에 달한다. 안데르센 동화의 특색은 그의 서정적인 정서와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그리고 따스한 휴머니즘에 있다.

《인어 공주》 《미운 오리새끼》 《벌거숭이 임금님》 등 아동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수많은 걸작 동화를 남겼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대부분의 생애를 해외여행으로 보냈다. 그가 가장 즐겨 체류하던 나라는 독일과 이탈리아였으며, 교우범위도 매우 광범위하여 국내외의 시인 ·문학자 ·미술가는 물론 왕후(王侯)와 저명한 정치가에까지 미쳤다.

그 가운데서도 그에게 가장 깊은 정신적 영향을 준 것은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리는 제니 린더와의 교제였다.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은 연애까지는 진전되지 않은 채 안데르센으로 하여금 깊은 체념에 빠지게 하였다. 《즉흥시인》에 이어 내놓은 《가난한 바이올리니스트 Kun en Spillemand》(1837) 《그림 없는 그림책 Billedbog uden Billeder》(1840)은 그의 많은 작품 중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널리 애독되는 명작들이다.

1846년 안데르센은 독일어판 전집을 내기 위하여 자서전 《나의 생애 이야기》를 썼으며, 1855년에 증보하여 상하 2권으로 완성하였는데, 자전문학사상(自傳文學史上)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867년에는 고향 오덴세의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어 전국민의 축하를 받았다. 1870년대 초부터 건강이 나빠져 즐기던 여행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1875년 8월 친구인 멜피얼가(家)의 별장에서 죽었다. 그의 장례일에는 덴마크 전국민이 복상(服喪)하였고, 국왕 ·왕비도 장례에 참석하였다. 1995년 기독교한국루터회가 뽑은 ‘세계를 빛낸 10인의 루터란’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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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사전 - 안데르센. Kingston Upon Thames. 23rd. June.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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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er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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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ersen, Hans Christian, 1805.4.2~1875.8.4. Mersea Island. Colchester.

안데르센은 성격이 매우 여렸다. 학교에서 선생이 자기에게 회초리를 들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책가방을 들고 곧장 집으로 와 버렸다. 가난한 가정의 아동들을 위한 공립 학교에 다시 들어간 그는 학창 시절 내내 자신이 영웅이 되는 공상에 빠져 지내곤 했다. 친구들은 그러한 그를 언제나 비웃었다. 동네 아이들은 "저것 봐라, 극작가 나가신다" 하며 놀려댔다. 그럴 때면 집으로 달려가 구석에 숨어서 울면서 신께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한다.

안데르센의 집안은 가난하다는 것 외에도 문제가 많았다. 할아버지는 정신분열증 환자였고, 할머니는 병적인 거짓말쟁이였다. 아버지도 정신분열증을 겪다가 사망했고, 어머니는 현실의 고통을 술로 잊으려다 알콜 중독자가 되었다. 숙모는 코펜하겐에서 윤락 업소를 운영했다.

안데르센은 집 근처에 있는 극장에 드나들면서 연기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열 다섯 살 때 왕립극장에 취직하기로 결심하고 관계자들을 찾아가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한번은 왕립극장의 공연에 단역으로 출연할 기회가 생겼다. 공연을 앞둔 그는 마치 세상이 자신의 발 아래에 있는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런데 한 배우가 그이 초라한 행식을 놀려댔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던 그는 울면서 무대에서 뛰쳐나갔다. 안데르센은 가수로서, 무용수로서, 배우로서 그리고 극작가로서 모두 외면 당했다. 못생긴 외모와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열 일곱 살에 어미니의 바람에 따라 중학교에 입학하지만, 내내 우울하게 지냈다. 그러다 입학 시험을 통과해 마침내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된다. 그리고 한 달 후 왕립학사 자격증을 받았다. 이 때부터 시와 소설 그리고 극본들을 발표하지만, 그의 원고는 오류 투성이었다. 오자와 문법적인 오류는, 그를 문단에 갓 데뷔한 애송이 취급을 하는 비평가들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놀라운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인어공주> <미운 오리새끼>등 영원히 남을 세계적인 동화들을 발표한다.

그는 정신병에 걸릴까봐 평생 두려움에 떨었고,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사랑에도 몇 차례나 실패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내 삶은 풍요롭고 행복했기에 마치 아름다운 동화 같은 것이었다"

고 말했다. "스스로 백조의 알에서 부화했다고 믿는 한, 오리 마당에서 태어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백조알이다. 나는 백조알이다. 나는 백조알이다.-퀵타임라이브방송공작단-피아노맨님의 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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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3, 2005

Wood

이렇게 숲이 많은 곳에서 살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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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광 [測光, photometry] 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Let's Click!!!
Knights Park. Kingston University. 22nd. June.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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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olation

블로그야 블로그야 요즘 심심하지. 날씨도 더운데, 할일 많은 주인은 놀아주지도 않고.
이 기회에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네 정체성에 대해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보렴.
너도 뭔가 해야할 일을 하나 찾아야 될 거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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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sea Island. Colchester. November.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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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8, 2005

Supinfocom Valenciennes

조심스럽지만, (조금 늦었더라도) 이렇게 방향을 잡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http://www.supinfocom.fr/index.html
http://www.supinfocom.org/
http://www.supinfocom-arles.fr/index2_english.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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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7, 2005

MUT

MUT was created to provide a multifunctional toolbox similar to "Maya Custom Toolbox" (by Michael Stolworthy), but driven by xhtml instead of mel. (Consult the readme because you must enter a custom path!) New to V1.1 - MUT gets a facelift and speedier navigation.
젠장..너무 좋다. 지자스, 팍킹 쿨,, 뎀 쿨 이다.
이런 걸 개발하는 놈들의 두뇌속엔 뭐가 들어있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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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orphzo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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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05, 2005

No Surprises

A heart that's full up like a landfill,
a job that slowly kills you,
bruises that won't heal.
You look so tired-unhappy,
bring down the government,
they don't, they don't speak for us.
I'll take a quiet life,
a handshake of carbon monoxide,
with no alarms and no surprises,
no alarms and no surprises,
no alarms and no surprises,
Silent silence.
This is my final fit,
my final bellyache,
with no alarms and no surprises,
no alarms and no surprises,
no alarms and no surprises please.
Such a pretty house
and such a pretty garden.
No alarms and no surprises,
no alarms and no surprises,
no alarms and no surprises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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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도에 제대했을때 군대동기였던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와서는 신촌블루스LP판을 업어가고 이걸 두고 갔었다. 작년에 Spanish Apartment 라는 영화에서 다시 들었다.
나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림이 떠오르는 그런 음악이 더 좋다.


No Surprises. Radiohead. OK Computer.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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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04, 2005

Priceless

The Walking Teapot's aerodynamic design is well suited for the stresses expected of any wind-up device, yet its sleek form has even greater significance, as the walking teapot is an homage to one of the first 3D models ever created - the Teapot - and this model has appeared everywhere in graphics publications since.

Fabricated by Martin Newell in 1974, the Teapot has become a popular icon within the 3D Graphics Consortium.
Martin Newell used his own kitchen teapot as reference - and immortalized it - it turned out to ben ideal model, simple and modest yet full of boundless topological Wonder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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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ts from Pixar. 2nd of June at Apple store Regent Street

Renderman for Maya seminar -> Let's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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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02, 2005

Untitled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수선화에게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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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nience

디지탈 카메라의 편리함으로 인해 아그파 필름이 140년만에 사라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확실히 현상이니 인화니 하는 복잡한 말보다 출력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우리는 한때 스물네방짜리 혹은 삼십육방짜리라는 말과 함께 후지를 써야되나, 코닥을 써야되나, 아그파를 써야되나 고민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128메가, 256 메가단위의 용량이라는 말과 함께, 메모리스틱인지, 메모리카드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소니의 광고에는 "더이상 생각하지도 말고 무조건 찍어"라는 카피가 등장한다.
무조건 막 찍으라고 그런다. 이제는 컴퓨터도 필요없고, 디지탈카메라와 프린터만 있으면 누구나 다 세상 어느누구나 모두 다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편리함이 가치를 전복시켜 버렸다.이제 오래된 사진은 점점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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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eld Kite for final project. Special Thanks to my parents and Yubi.
Above small reel which is named "Earl-Lae" or "Yeon-Ja-Se" made by my father.
He made this reel for me and my brother 20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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