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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3, 2011

Language

필요한 사람들이
필요한 곳에서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KAIST의 ARA BBS에 쓴 글을 이곳에도 저장합니다. ARA는 널리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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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강의에 대한 개인 의견과 경험담

한상근 교수님께서, 앞으로는 우리 학생들을 위해서 한국어 강의를 하시겠다고 밝히신 것에 저도 용기를 내어 개인적인 의견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냥 많은 사람들의 의견들 중 한가지라고만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상근 교수님 의견에 더해서, 다른 이유들로 영어강의 100% 의무화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가지 이유입니다.

첫째, 한국어는 한국의 대표언어이고, KAIST는 한국의 과학대표 대학인데, 그런 대표 대학에서 자기나라 말이 아닌 영어로 100% 학문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그 국가의 수치라고 믿습니다. 고등 학문을 자기나라 말로 하지 못하고, 자기 말로 배우지 못해 외국어로 사유해야 한다면, 그 국가의 국민들은 잘못하면 <미개인>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언어를 갈고 닦으려면 그 국민들이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학자들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국제 공용어 (lingua franca)로써의 영어의 역할 때문에, 영어를 모르는 것은 외국의 학문을 빨리 익히는 것과 외국과의 교류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알기 때문에, 이를 모두 폐지하여 학생들이 영어에 노출될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학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의 대표 과학교육기관이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강의를 한다는 것은 조금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강의 경력은 거의 만 9년 (미국 사립대 4년, 미국 주립대 3년, KAIST 2년)이지만, 영어로 밖에 강의를 못해 봐서, 한국어로 수업을 해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라에도 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제가 영어가 싫고 무서워서 영어 강의를 기피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영어강의가 배정되면 그냥 영어로 할 것입니다만, 한국어 강의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둘째로, 학생들이 영어를 잘 하는 것은 분명히 살아가는 데 있어, 학술쪽이건 회사건, 매우 편리한 일이 많을 것이며, 또 본인에게 많은 득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이 매우 유창한 고급 영어로 학회에서 발표를 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것이라도, 어떤 것들은 습득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언어는 대표적으로 그러합니다.

올 해 4명의 고인이 된 학생들 중, 첫번째 조군과 마지막 박군은 제 제자입니다. KAIST에서 제자가 두명이나 고인이 된 사람도 저를 포함한 극소수일 것입니다. 최근의 일들에 저만큼이나 비통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월에, 조군의 부산 장례식장에 다녀온 이후에, 결심을 단단히 먹고, 입학처 및 브리지프로그램 사람들과 많은 언쟁을 벌였는데, 그것은, <수학능력>과 <영어능력> 등의 것은 단기간에 속성으로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동안 오래 노력을 해야 일정 수준에 오를 수 있는 것이기에,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입학을 시켜 학생들에게 의미없는 고통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면 대책이라도 마련하고 뽑아야지요.

영어로하는 강의를 들으면 물론 영어 실력을 더 빨리 키울 수 있을 가능성은 더 클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과연 가능이나 하며, 또한 의미가 있을까요? 예를들어서,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을 모스크바에 떨어트려 놓고 당장 러시아어로 하는 수학 수업을 들으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이런 것은 체계적인 고문(institutional torture)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에는 준비가 필요하고, 사람들은 닥치고 민다고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저는 수학을 직업으로 하고, 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다수는 제가 영어를 매우 잘 한다고 생각하고 제가 원래부터 다 잘했을 것으로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어린 시절에 이 두가지를 다 잘 못했습니다. 20년쯤 전, 제 중학교 1,2학년 시절의 친구들은 제가 수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먹고산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과학자가 되는 것이 제 꿈이었는데, 그래서 <학비 없이 다닐 수 있는 대학 KAIST> 는 제 중학 시절의 꿈이었습니다. 과학자가 되려면 과학고를 시도하는게 맞고, 그러려면 수학을 잘해야만 한다는 과학 선생님의 조언 때문에, 중학교 시절 막판 1년 반동안 수학 공부를 겨우 하긴 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외웠어요. 점수는 지원 요건 커트라인을 겨우 넘었어요. 그렇지만 과학고를 붙은 건, (당시에는 200점 만점의 지필고사를 쳤습니다) 아이러닉하게도 국어시험 점수가 만점이라서 그랬음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제 고교 시절에는, KAIST 입시는 본고사 뿐이었기에, 고교 내신 성적이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차근차근 혼자서 긴 시간 고민을 하며 하나씩 고민을 하면서 매우 재밌는 주제라는 것을 겨우 깨달았습니다. 대학에 와서는 교만하게 학년을 뛰어넘어 수강한 어느 전공에서 C+를 받았는데, 결국은 그것도 제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닥쳐서 그리했었고, 차근차근 생각을 해 보다보니, 지금은 그 분야가 제 박사학위 이후의 전공이 되어 학생들에게 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도 긴 준비시간이 있었습니다.

영어의 경우도, 고교 시절에 제법 공부를 했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근본적으로 말하고 듣고 할 기회는 대학시절까지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대학시절이던 90년대 중반에, 많은 내외의 다수 프로그램 기회를 영어 말하기 듣기 실력이 잘 안되어 놓친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때에는 운이 좋아 노벨상 수상식에 한국 대표 대학생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후보자로 올랐다가, 제가 영어를 못한다고 당시 심사위원이던 부총장/교무처장에게 매우 혼났습니다. 영어도 못하냐고. 사실 화가 났던 것이, 저는 집이 잘 살지 못해 단 한번도 외국 구경도 못해 영어 말하기 연습을 해 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인터뷰에서는, 외국에서 어린 시절에 살다 온 영어가 유창한 여학생이 뽑혔습니다. 많이 좌절을 했습니다. 나는 가난한 집 출신이라 영어를 못하고, 저 학생은 집이 잘 살아 외국 경험이 있어 되는데... 하고 절망도 했습니다. 만약, 제가 요즘 같은 100% 영어강의를 하는 KAIST에서 대학을 다녔더라면, 저는 아마 졸업을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영어 실력이 많이 는 것은, 우선, 대학4학년 봄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하여, 아이러닉하게도 병역을 수행하면서 마지막 1년쯤 짬밥이 쌓여 영어 공부를 할 저녁 시간을 매일 몇시간씩 확보할 수 있었을 때였습니다. 두번째 기간은, 그 후 복학 후에, 미국에 유학을 가서는, KAIST에서 한국어로 열심히 교수님들께 배웠고 열심히 한 덕에 전공 실력이 좋다고, 박사과정 코스웍 전공 공부에 힘들어하는 미국, 캐나다, 영국의 친구들 (이들은 총장님이 좋아하시는, 하버드, 예일, MIT, 캠브리지 등 최고 명문대 출신들이었습니다.) 이 저와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을 하면서, 같이 놀러 다니고 같이 술마시고 잡담을 하고 여행을 다니고 하면서였습니다. 또, 수학박사과정에서는 의무적으로 학부생들 앞에서 미적분학 강의를 해야하기에, 수업료를 연간 몇 천만원씩 내는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마루타 실험을 하면서 실전도 쌓고, 또 나름대로 그런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강의연습을 하면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영어를 잘 하게 된 것은, 탄탄한 수학 전공 실력이 있어서였고, 그런 수학 전공 실력은 우리말로 KAIST의 교수님들께 잘 배운 덕분이었으며, 그래서 박사과정에서 제 영어 실력과 상관없이 박사과정 동기들이 제 전공 실력을 보고 저와 같이 공부하자고 온 덕분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원래 영어를 잘 못했지만, 오랜 시간동안 준비를 하면서 이를 키워 나갈 기회를 거친 이후에야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었고, 또 그런 실력 키울 기회도, 준비 안된 제가 영어 강의를 들으면서 영어 실력이 는 것이 아니라, 전공 실력이 바탕이 된 덕에 쌓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학부학생들을 볼 때, 특히 지방의 가난한 집 출신으로 영어 배울 기회가 없었거나 하는 등의 학생들을 볼 때, 제가 대학 시절을 떠올립니다. 영어 강의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보면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영어 교육을 시키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몇년 후의 미래에 정말로 필요할 때 잘 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배울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요? 이미 잘 하는 학생들을 키우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 더 많은 학생들이 더 잘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운이 좋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KAIST에 근무를 하게 되었고, 과거에 대학 등록금을 대기 쉽지 않은 부유하지 않은 집 출신으로써 많은 빚을 졌다고 생각하여 최근 2년간 KAIST에 900만원가까이 개인으로써는 적지 않은 돈도 기부하였습니다. 빚을 갚아 희망과 은혜의 연쇄작용을 끊어지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학교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과거의 저처럼, 과학자를 꿈꾸던 가난한 지방 출신이, <저 곳에만 가면 등록금 걱정 없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다>라는 사람이, 학교에 들어와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의 어린시절의 영어 실력은 사실 부모의 재력에 많이 의존을 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학생들이 희망을 품고 들어와서, 희망을 유지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그 희망을 계속 전달해 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제 재임용 심사가 얼마 안 남았고, 지난 2월에는 명예박사 건에 대해서 총장님에게 이미 직언을 하여 언제까지 KAIST에 있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있는 동안에는 학생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administrator at April 13, 2011 12:41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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